풍류여행-5.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풍류여행-5.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 권오만
  • 승인 2019.03.31 1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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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월정사-울울창창 전나무 숲의 종교적 활용

글/사진 권오만 교수 (경동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웬만큼 고개를 젖혀들지 않고서는 그 끝을 보기 힘들만큼 늘씬하게 뻗어 올라간 전나무 숲길에 흐르는 산들바람과 잔잔한 개울 물 소리를 길 앞잡이 삼아 걷다 보면 도심에서 미세먼지로 시달렸던 가슴속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씻어지는 것 같은 느낌에 세상 온갖 시름이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권오만 교수
권오만 교수

 

산경부나 산속에 위치한 대개의 사찰은 자연스레 개울을 끼고 위치하는데 사찰에서 개울은 일주문이 그랬듯이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는 공간·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주문 앞을 흐르는 개울은 불교의 이상향이라 할 수 있는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향수해(香水海-수미산의 일곱 산맥을 둘러싼 여덟 바다 중 맨 바깥쪽 짠 바다를 제외한 일곱 개의 민물바다)를 상징하며 그런 이유로 개울을 건너는 다리에 피안교 또는 불자의 궁극의 소망을 담아 해탈교로 이름 짓고 성역과 속세를 연결하고 구분하는 역할을 합니다.

 

월정사 전나무 숲과 나란히 흐르는 개울 역시 속세를 넘어온 성역인 수도의 공간이자 이상향을 상징하는 공간적 장치이기에 피안교를 건너와 걷는 이 숲길이 더욱더 깨끗하고 청량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전나무 숲길이 인도하는 방향으로 무념, 무상의 걸음을 걷다보면 아무리 산만한 사람도 딴청을 부릴 수 없도록 한쪽 방향만 보게 되는데 이렇게 하나의 방향성을 이룬 축선을 따라 연속적으로, 조금씩 공간을 변화시킴으로써 이 공간을 설계한 능력자(?)는 그 다음 공간에 대한 기대감과 경외심, 그리고 약간의 엄숙한 긴장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냅니다.

엄숙함이 깃든 전나무 숲길
엄숙함이 깃든 전나무 숲길

 

일반적인 산지 사찰의 경우 다음 공간에 한 기대감과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산지형 사찰이 입지한 공간의 자연스런 경사도를 이용하여 다음 공간을 미리 예상하거나 넘겨 볼 수 없도록 절묘하게 공간배치를 했고 그로인해 다음 공간을 미리 알게 하거나 예측할 수 없어 공간에 대한 긴장과 기대감을 극대화시키는 상당히 효과적인 장치를 해 두었는데 이를 점승법(漸昇法)이라 하는데 힘들게 경사로를 올라야 접근할 수 있는 산지형 공간의 불리함을 오히려 긴장감과 호기심을 통해 종교적 공간의 엄숙함이라는 장점으로 극적인 전환시켜 활용한 대단히 훌륭한 공간구성 기법입니다.

 

불교 사찰에서 활용하는 점승법은 본당이 위치한 높은 위치의 입지를 활용하여 낮은 단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위계에 대한 질서와 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도록 배치를 하였고 이로 인하여 건축과 공간에 대한 위계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높은 곳에 있는 공간, 건물이 더 중요하고 위계가 높은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사찰의 건축 공간 위계는 아래에서 위로 흐르면서 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며 점승법으로 구분한 공간의 위계 역시 불교에서 의미하는 이상향에 대한 공간적 상징성을 담고 있습니다.

 

점승법적 시각통제 기법
점승법적 시각통제 기법

 

그렇지만 월정사는 일주문에서 본당까지의 고도차가 일반적인 산지형 사찰과는 다르게 비교적 완만하여 경사로를 오르면서 앞으로 전개될 공간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 긴장감 등을 줄 수 있는 점승법을 사용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종교적 긴장감을 약화시켰던 다소 완만한 지형적 어려움을 대신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위압감을 주는 전나무 숲을 활용하여 종교적 공간에 어울리는 경외심과 긴장감, 그리고 시각적인 차단을 통해 다음 공간에 대한 기대감을 조성하는 탁월한 방법을 택한 것 아닐까요? 의도하였던 그렇지 않았던 어쨌든 월정사 전나무 숲은 불교 사찰의 엄숙함, 경건함이라는 종교적 공간의 기능을 극대화 시켜 이곳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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