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여행-6.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풍류여행-6.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 권오만
  • 승인 2019.04.06 2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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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월정사-종교적 엄숙함과 경건함을 유도하는 산문

글/사진 권오만 교수 (경동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권오만 교수
권오만 교수

 

전나무 숲길을 따라 걷는 동안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내면 깊이 몰입할 수 있었던 마음과 시각이 숲에 둘러싸여 조용히 흐르던 물소리로 그 존재를 짐작하고 있었던 개울을 만나 흐트러질 즈음, 숲길 한쪽에 축선을 형성하여 가리키는 방향의 끝으로 눈을 맞추어 보면 새로운 산문이 또 다시 시선을 막아섭니다.

전나무 숲길의 끝

바로 천왕문입니다.

일반적인 사찰의 공간구성이 그러하듯 월정사의 공간도 일주문을 지나 속세의 번잡했던 마음을 조금씩 다스리며 걷다보면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등으로 불리는 산문과 누각-월정사에는 금강문, 불이문, 그리고 통과해야 하는 누각을 설치하지는 않았습니다만-을 통과하게 되는데 일주문의 설치 의미를 살펴보아 이해했듯이 본당에 접근하는 이동선상에 설치된 산문들과 본당 앞에 설치된 누각에는 종교적 의미와 설치목적을 교묘하게 감춰놓은 숨겨진 의도가 있습니다.

금강문이나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려는 의미가 있고 불이문의 경우는 하나뿐인 궁극의 진리를 상징하며 이곳을 통과해야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로 들어갈 수 있음이니 결과적으로 불이문을 통과해야 만날 수 있는 본당이 있는 공간은 이미 불국토라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만 산문 설치에 따른 종교적 의미는 배제하고 이렇게 경계를 구분 짓는 담을 두르지 않고도 각 공간의 이행 단계별로 문을 설치하여 공간을 조성한 특별한 이유는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아오라는 세상의 조바심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겨내야만 하는 생존할 수 있었던 치열한 경쟁에 복잡다단했던 사람들이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불이문 등 성역의 관문을 통과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인 엄숙함, 경건한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조성하려는 이유입니다.

 

월정사 천왕문

 

여기에 더해 산문과 누각의 설치의도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본다면 종교적 상징성을 이유로 전이공간의 연속선상에 설치한 산문들과 또한 중심공간을 완전히 막아선 채 아래층 공간은 이동통로의 역할을 하고 위층의 공간은 강당이나 종루로 입체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설치한 누각은 다음 공간에 대한 적극적인 시각적 통제와 아래층을 통과하면서 느낄 수 있는 극단적인 명암 변화에 의해 누각을 통과한 이후 상대적으로 밝고 탁 트인 공간과 갑자기 마주치면서 느끼는 개방감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세상과는 완전한 단절과 극적인 공간적 이동의 분위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이러한 공간전이의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이 공간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이동방법으로 누각의 하단 부를 통과해야하는 누하진입법(樓下進入法)과 좌우 측면으로 돌아서 진입해하는 측면진입법이 있는데 두 방법 모두 다음 공간에 대한 시각적 차단과 그로 인한 종교적 경외심, 엄숙함을 이끌어내는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렇지만 두 가지 방법 중에서도 특별히 누하진입법은 누각 아래층을 통과할 때 좁고 낮아 폐쇄적인 느낌의 공간을 통과하고 나오면 상대적으로 밝아지고 탁 트여 열려있는 넓은 본당의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의 시원한 시각적 전환과 경탄할 만큼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이동의 이끌어 내는 아주 탁월한 설계기법이며 마치 기차나 자동차를 이용해 여행을 하던 중 터널을 만나 통과할 때면 터널의 이전과 이후에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듯한 기대감이나 상상이 드는 것과 같은 일종의 터널통과효과 또는 동굴통과효과와 같은 극적인 분위기 전환방법입니다.

 

누하진입을 통한 극적인 명암대비 효과

 

갑작스런 명암의 대비를 통해 극적인 이야기 전개의 전환이나 환경변화와 몰입을 이끌어내는 방법인 누하진입법은 중국의 대표적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유명한 산문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진(晉)나라 때 한 어부가 떠내려 오는 복숭아꽃잎을 따라갔다가 작은 동굴을 통과해 이상향을 발견하였다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야기와 1968년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에서도 이와 같이 터널-동굴통과 또는 누하진입과 같은 극단적 공간 분위기 전환효과-의 통과방법을 활용하여 극적인 변화와 공간이동에 따른 극적인 몰입감을 제공하는데 성공하여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 소설,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설국(雪國)’의 명문장 ‘국경에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을 떠오르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설국의 시작을 알리는 첫 문장을 통해 세상의 모든 번잡함을 단박에 잊어버리고 눈 덮인 조용한 산간마을의 서정적 풍경에 푹 빠져들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이 소설을 노벨문학상으로 이끌었던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공간 전이의 극적인 효과를 얻기 위해 현대에서도 공간을 설계할 때 이렇게 숲(가로수 터널), 건물 또는 좁고 어두운 폐쇄적 통로를 설치하고 이곳을 통과하면서 느끼는 순간적인 압박과 해방감 등을 통해 짧은 순간에 세상과 공간적인 단절을 시켜 새로 진입한 공간에 대한 몰입도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놀이공간에서의 터널통과 공간 전이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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