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기행(奇行) (1) : 파리 시내 캠핑장에서 차박(車泊)을
프랑스 기행(奇行) (1) : 파리 시내 캠핑장에서 차박(車泊)을
  • 박주영
  • 승인 2021.05.0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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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프랑스 기행(奇行) (1) : '파리 시내 캠핑장에서 차박(車泊)을'

/글, 사진=이로문 법학박사/

이로문 법학박사

2010년 9월쯤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행 카페리에 차를 싣고 도버해협을 건넜다. 프랑스 칼레까지 가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프랑스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영국에서 배에 차를 싣고 프랑스로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배에서 차를 내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한참이나 낯선 길을 달려 저녁쯤에야 파리에 도착했다. 영국에서 사용하던 네비게이션이 유럽까지 안내하는 게 마냥 신기했다. 첫날은 이미 예약한 시내의 한 호텔에서 저렴한 와인 한 잔을 마신 후 파리의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내가 프랑스 유학시절 맛있게 먹었다던 베트남 쌀국수 집을 찾았다. 아내는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식당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식당 근처에는 동전을 넣고 이용하는 길가 주차장이 있었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마음 편하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몇 자리 빼고는 이미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프랑스까지 와서 굳이 쌀국수를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먹어보니 왜 이곳을 찾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쌀국수는 물론 후식까지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더 먹어보고 싶다.

오후에는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몽마르트 언덕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계획에 없던 캠핑을 하기로 했다. 캠핑 준비는 전혀 하지 않았지만 한낮 기온을 봐서는 하룻밤 정도는 차안에서 지내도 충분할 것 같았고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캠핑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차박”이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차박”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급하게 시내에 나가 한인 가게에서 캠핑의 기본적인 장비라 할 수 있는 버너, 라면과 차, 삼겹살을 비롯해 요리할 그릇 몇 가지를 구입해 무턱대고 파리 시내 센느강변에 있는 캠핑장으로 향했다. 파리 시내에 캠핑장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뭇잎이 물들기 시작한 9월쯤으로 한 낮의 날씨만 보면 캠핑하기에 더 없이 좋을 것 같았다. 캠핑장 입구 관리실에서 간단하게 캠핑 신청을 하고 전기를 사용할 키를 받아 지정된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넓은 캠핑장에는 이미 캠핑카와 텐트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주차된 캠핑카나 자동차의 번호판을 보니 프랑스 내에서보다 유럽 각국에서 온 차량들이 더 많았다. 캠핑장은 우뚝 솟은 나무들이 많아서 그런지 공기도 맑고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각각의 캠핑 공간은 바로 붙어 있었지만 허리가 좀 넘는 나무들로 막혀 있어서 우리나라 캠핑장에 비해 프라이버시가 잘 보장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속에 깊게 각인된 것은 샤워장이었다. 우리나라 해수욕장이나 캠핑장의 샤워공간은 동네 목욕탕처럼 탁 트여있는데 프랑스 캠핑장은 개인적인 샤워부스가 넉넉하게 설치되어 있어서 빈 부스에 들어가 편하게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비록 캠핑장이기는 하지만 남다른 배려가 부러웠다.

우리는 텐트가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저녁식사 준비를 했다. 저녁 메뉴는 캠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삼겹살이었다. 외국에서 처음 하는 차박에 처음 먹는 삼겹살이라 그랬을까.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옆에서 캠핑을 하던 외국인이 냄새가 좋다며 뭐냐고 물어봐서 삼겹살을 알기 쉽게 소개하고 고기 몇 점을 넘겨줬더니 맛있게 먹고 나서 소시지 몇 개를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삼겹살과 소시지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홍차까지 마시고 나니 밤이 저물었다.

잠 잘 생각을 하니 심각한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니까 낮과는 전혀 달랐다. 기온이 너무 내려가 잠을 잘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덮을만한 것은 낮에 사온 푸근한 담요 한 장밖에 없었다. 옷은 있는 대로 껴입고 차에 들어가 밑에 깔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깐 다음 담요를 덮었지만 추위를 이길 수는 없었다. 몸을 웅크리고 뒤척이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중간에 일어나 뜨거운 차를 마시고 또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나마 추위가 가시는 듯 했으나 새벽 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아침 햇살이 이처럼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빛 아래서 모닝 커피를 마시고 나니 몸과 마음이 좀 풀렸다.

낯선 땅에서 계획 없이 시작한 차박은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지만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기행(奇行)이었다. 파리의 센느강 옆 캠핑장에서 차박으로 떨면서 밤을 보냈다면 믿을만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차가 있어서 가능하기는 했지만 준비되지 않았기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이후에도 프랑스 이곳저곳에서 두 번의 차박을 더 했다. 물론 조금씩 진화해서 전기담요를 준비하고 가까운 프랑스 마트에서 장을 봐가며 프랑스식 간편 요리도 해먹곤 했다. 횟수를 더할수록 살림살이는 조금씩 늘어갔고 추억도 쌓여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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