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네덜란드가 기록한 세계 최초들
[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네덜란드가 기록한 세계 최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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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1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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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국기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가 10권으로 완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독자 중에는 '다음 도시'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다.

천재 시리즈는 완결되었지만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도시 시리즈를 쓰고 싶은 욕심은 있다. 다양성과 개방성으로 인해 거리마다 자유의 활력과 창조적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도시 이야기.

도시가 배출한 인물을 따라가는 내러티브가 아닌 도시의 여러 가지 특성을 옴니버스로 보여주는 도시 이야기.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도시 후보 영순위가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이다.

이 아이디어는 마이클 데너허 캐나다 대사와의 오찬에서 나왔다. 천재 시리즈를 알고 있는 대너허 대사가 내게 몬트리올을 연구해 책으로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다. 나는 그 말뜻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몬트리올은 암스테르담과 함께 도시 탐구 대상으로 염두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뉴올리안스, 몬트리올···.

나는 '최초'(the First)에 관심이 많다. 세상이 비틀거리고 때로는 게걸음을 걸으면서도 그래도 여기까지 발전한 것은 최초의 사람들 덕분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시도하는 사람은 뱃머리의 선장처럼 외롭고 힘들다. 안팎으로 흔들어대고 공격을 받는다.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된 시기와 모함이다. 처음 해내는 사람을 선지자(先知者)라 부른다. 영어로 visionary다. 회사의 창업자는 선지자다. 미디어아트 창시자 백남준이 '글로벌 비저너리'다.

나는 '런던이 사랑한 천재들'을 쓰면서 영국사를 조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영국은 최초의 사람과 최초의 제도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다. 뉴턴의 중력의 법칙을 비롯해 의회민주주의, 산업혁명, 자본주의, 사회주의, 증기기관, 철도, 지하철, 보험, 축구, 럭비, 보이스카우트···그리고 훌리건까지.

최근 나는 네덜란드를 조금씩 연구하는 중이다. 네덜란드를 공부하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었구나.

유럽 지도상의 네덜란드 위치 / 자료출처 = 위키피디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같은 유럽의 강대국들에는 비할 바가 못 되지만 네덜란드는 최초와 최고를 상당수 보유하는 나라다. 면적과 인구 대비로 보면 단연 세계 최대의 '최초 보유국'이다.

면적 4만1526㎢. 대한민국 면적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 네덜란드는 프랑스, 독일, (바다 건너) 영국 3국에 둘러싸여 있다. 네덜란드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 벌인 분투는 눈물겹고 처절하다. 17세기 해양강국으로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고, 현재도 강소국(强小國)으로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나라 네덜란드.

네덜란드는 1950년 한국이 북한 공산군의 침략을 받았을 때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다. 미국, 영국, 호주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1개 대대 1819명을 보냈다. 이 중 120명이 전사했다. 120명은 현재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 중이다. 네덜란드 참전비는 영동고속도로 새말 IC로 나가면 바로 보인다.

루 오텐스를 아시나요?

우리는 수에즈운하가 화물선의 좌초로 엿새 동안 막혔을 때 세계가 쩔쩔맸던 것을 기억한다. 중국에서 출발한 그 화물선의 최종 목적지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장기화될 것만 같았던 화물선 부양작업에 투입된 회사는 네덜란드 해양운송기업 인치케이프였다. 2만7000㎥의 모래를 제거하고 18m 깊이까지 구멍을 파 화물선을 부양시키는 데 성공했다.

네덜란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를 기록하며 인류사회를 윤택하게 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2007년의 루 오텐스 /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지난 3월 타계한 카세트테이프 발명자 루 오텐스(1926~2021). MZ세대는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해본 일이 거의 없지만 그들의 부모 세대에게 있어 카세트테이프는 문화생활의 처음과 끝이었다.

직업적으로 기자들만큼 카세트 녹음기의 신세를 크게 진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인터뷰를 하러 나갈 때 반드시 준비하는 게 녹음 테이프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카세트테이프를 발명한 사람이 네덜란드 사람 루 오텐스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MP3 플레이어가 등장한 이후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 같았던 카세트테이프. 최근 아날로그 회귀 트렌드와 맞물려 카세트테이프가 조금씩 주목받는 중이다.

1952년 필립스전자에 입사한 오텐스는 1960년 제품 개발부 책임자가 된다. 이때부터 오텐스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저장매체를 연구했다. 그전에도 릴 테이프가 있었지만 크기가 커서 휴대가 불가능했다. 오텐스는 '주머니에 들어가는 크기'를 목표로 개발에 들어갔다. 그리고 1963년 베를린 라디오전자 전시회에서 최초의 콤팩트 카세트테이프를 선보였다.(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90달러로 아프리카 가봉과 함께 세계 최빈국 대열에 있을 때다) 이후 카세트테이프는 1000억개 이상이 팔려나갔다.

카세트테이프를 대중화시킨 기계를 개발한 것은 일본 소니(SONY)사. 1979년 소니사가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 '워크맨'을 세상에 내놓으면서 카세트테이프는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1980년대 초반 워크맨을 들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것은 '얼리 어답터'이자 최고의 멋쟁이였다. MZ세대의 부모 세대가 바로 워크맨으로 한밤중 FM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녹음하던 사람들이다.

1653년 암스테르담 주식거래소 풍경.©Emanuel de Witte

1570년 세계지도, 1608년 망원경

대항해시대의 선두 주자는 스페인과 포르투갈. 네덜란드는 후발주자였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 못지않은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항해하려면 항해 지도가 필요하다. 최초의 세계지도는 1570년 네덜란드 지리학자 오리텔리우스가 만들었다. 직전까지의 지리상의 발견을 종합한 지도였다.(남반구의 땅들은 모호하게 그려졌다) 17세기 대서양·인도양·태평양은 사실상 네덜란드의 바다였다. 어딜 가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선박의 깃발이 나부꼈다.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밤낮 없이 세계 바다를 휘젓고(떠돌아) 다니는 네덜란드 선원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명. 과학사 연구가들은 16세기와 17세기를 나누는 중요한 사건을 광학장비의 개발로 꼽는다. 망원경과 현미경. 둘 다 대상을 확대해서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양을 오가는 대항해에서 중요한 것은 최첨단 장비의 보유다. 항해에서 수십km 밖을 내다보는 것은 범선의 운명을 좌우한다. 1608년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망원경을 발명한 사람은 네덜란드 안경업자 한스 리퍼세이(1570~1619)다. 독일 서부 베젤 태생이지만 1594년 네덜란드로 이주해왔다. 이때부터 그는 안경제조업에 뛰어들어 평생을 안경제조 분야에서 일했다. 그는 아이들이 불량렌즈를 가지고 노는 것에서 착안해 망원경 개발에 뛰어들었다. 1608년 오목렌즈와 볼록렌즈를 이어붙여 망원경을 발명한다. 그는 망원경 이름을 네덜란드어로 관측을 뜻하는 '키케르'(kijker)로 불렀다. 그는 수도 암스테르담으로 가 정부에 특허권을 신청했지만 특허권을 얻는 데 실패한다. 이 소식을 접한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리퍼세이가 만든 것을 기반으로 성능이 향상된 망원경을 제작하게 된다. 망원경이 발명되면서 천문학은 몇 단계 도약·발전한다. 현미경을 발명한 사람도 네덜란드 사람 레벤후크(1632~1723)다. 현미경을 통해 인류는 눈에 보이지 않던 미생물의 신세계를 발견했다.

1655년 뉴암스테르담에서 벌어진 첫 노예 거래. ©Howard Pyle

주식회사, 동성애, 스마트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최초의 주식회사다. 1683년 제주도에 표착해 13년간 조선에 억류된 헨드릭 하멜은 동인도회사의 서기였다.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거래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최초로 증권거래소가 세워졌다. 이런 네덜란드를 모방해 세계 두 번째로 주식회사와 증권거래소가 설립된 곳이 영국 런던이다.

신대륙에 아프리카 노예를 데려와 처음으로 거래한 사람들도 네덜란드인이다. 맨해튼에 뉴암스테르담을 건설한 네덜란드인은 1655년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흑인 노예를 데려와 거래했다. 오늘날 미국이 겪는 인종 갈등의 씨앗은 사실상 네덜란드가 뿌린 씨앗이다.

리얼돌(real doll)의 원조도 네덜란드다. 17세기 네덜란드 선원들은 한번 출항하면 최소 몇 개월씩 육지를 밟지 못했다. 예나 지금이나 선원들은 대부분 20~30대다. 선원들은 낡은 옷을 여러 개 포개고 꿰매 자위용 인형을 만들었다. 그러던 것이 고무 인형을 거쳐 현재의 리얼돌로 진화했다.

유럽 국가들중 동성애 인구가 많은 국가가 스페인, 네덜란드 등이다. 스페인이나 네덜란드에서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동성애 묘사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대항해시대 바다에서 보내야 했던 남자들의 밤을 상상해 보라. 2000년 네덜란드에서 동성애 결혼을 세계 최초로 인정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네덜란드는 세계의 첨단 농업 강국이다. 농업이 노동력의 4%를 고용하고 있지만 농업 수출액은 총수출액의 21%를 차지한다. 네덜란드 농업 수출은 유럽연합 내 1위이고, 전 세계에서는 미국 다음이다. 네덜란드는 첨단온실을 이용해 농산물을 생산하는 스마트팜의 선구자다. 네덜란드는 농사의 99%를 스마트팜에서 생산한다.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 강소국 네덜란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 생활의 다양한 방면에서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우리는 네덜란드식으로 세계 최고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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