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여행-8.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풍류여행-8.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 권오만
  • 승인 2019.04.22 2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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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월정사-적광전 그리고 적멸보궁

글/사진 권오만 교수 (경동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권오만 교수
권오만 교수

 

종교적 공간을 설계한 의도에 따라 시각을 통제하고 불손한 행동을 자제시켜 경건하고 엄숙해야할 공간에 대한 예를 지켜낸 문루를 지나 세상의 번잡한 마음까지 떨어 낸 숲길의 고요함 속에 자신을 맡긴 채 깊은 성찰의 느린 걸음으로 산 깊은 곳에 위치한 월정사 본당 공간인 적광전을 만나면 마당 한가운데 화려한 팔각구층석탑이 부지불식간에 온 마음을 다 끌어당기며 반겨줍니다.

8_1_월정사_적광전과 구층석탑
8_1_월정사_적광전과 구층석탑

탑은 인도의 스투파stūpa-석가모니의 사망 후 유골을 분배하고, 그 뜻을 기리기 위해서 설치하기 시작한 봉헌탑-가 변형된 것으로 사리를 안치하는 용도로 사용하며 주 건물인 대웅전 앞 중앙 공간에 하나의 탑 또는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의 배치와 같이 두 개의 탑이 중심과 균형을 이루어 공간을 구성합니다.

스투파는 불교의 교리를 설파하는 강학적 공간의 역할도 있고 평면의 형태는 만다라와 같이 불국토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스투파에서 유래한 탑은 강학의 공간으로 활용하기에는 규모가 작아서 아주 중요한 불구를 보관하거나 법력이 높은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는 부도탑의 역할을 하기도 하니 석탑의 설치의미를 생각한다면 단지 미적인 요소만을 고려하여 일부의 개인주택 정원 또는 전통음식점과 같은 곳에서 공간을 치장하는 조경요소로 사용하는 방법은 그리 권장할 만한 활용은 아닙니다.

적광전에는 비로자나 부처님-부처님의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인 진신眞身인 법신불法身佛로 일반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함-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적광전, 또는 대광명전이라고도 하는데 월정사 적광전에는 석굴암의 불상 형태를 그대로 따른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고 1964년 중창당시에는 대웅전이라 하였으나 나중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신다는 의미로 적광전으로 현판을 고쳐 달았다고 하니 석가모니불을 그대로 모시고 있는 이유인 듯합니다.

여기까지만 보아도 먼 길을 떠나 이곳까지 찾아온 여행의 가치를 충분히 얻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마음에 여유를 갖고 둘러본다면 월정사와 불교 가람이 품고 있는 특별함을 한층 더 깊이 느껴볼 수 있는데 우선 중심건물인 적광전-일반적인 사찰에서는 대웅전-의 뒤쪽 공간으로 돌아가 보면 한 단 더 높은 곳에 올라서 있는 삼성각을 만나볼 수 있는데 삼성각은 토속신앙의 산신령인 산신,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칠성신, 그리고 홀로 깨우침을 얻어 복을 준다는 독성 또는 단군 등 삼신을 모시는 공간으로 우리의 전통 토속신앙과 신선사상이 융합되어 공존하는 곳으로 토착신앙에 대한 불교 사찰의 품 넓은 포용력을 볼 수 있습니다.

월정사에서 가장 안쪽, 가장 높은 단에 설치된 삼성각
월정사에서 가장 안쪽, 가장 높은 단에 설치된 삼성각

한편으로 전통공간의 구성을 보면 공간의 수평적, 수직적 위치를 통해 그 중요성을 구분 짓는 명확한 위계질서가 있는데 수평적 위계로는 가장 안쪽을, 수직적 위계로는 한 단 더 높은 곳을 공간의 배치 상 상대적으로 높은 위계의 공간으로 설정하는 상징적이지만 엄격한 의미의 예법을 두고 있는데 사찰의 가장 중요하고 중심이 되는 공간인 대웅전-월정사에서는 적광전-보다 더 안쪽, 그리고 한 단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삼성각에 대한 공간적 배치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삶을 통해 이어온 토착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격을 높여 배려해 주는 큰마음임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삼성각 외벽에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에.......”하며 이야기를 풀어가시던 할아버지의 구수한 입담과 함께 무섭기도 했지만 때로는 인간미 넘치는 해학을 전해주었던 친근한 모습의 호랑이가 긴 장죽의 담뱃대를 물고서 예의바른 모습의 토끼가 다소곳이 담뱃불을 붙여주기를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기다리는 정감 있는 벽화를 그려놨는데 조급함이 없는 노련한 여행자를 위한 덤입니다.

삼성각 외벽화
삼성각 외벽화

그다음으로는 시간이 다소 걸리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경사가 가파르고 거리가 있어 약간의 산행의 느낌이 드는 오대산 중대에 있는 적멸보궁을 다녀오기를 권하는데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법당 안에는 따로 부처님의 상을 조성하지 않고 불단만 설치하였습니다. 오대산 사자암 적멸보궁은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영취산 통도사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과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이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적멸보궁 바로 뒤에 있는 마애불탑에 모셨다고 합니다.

오대산 사자암 적멸보궁
오대산 사자암 적멸보궁

 

마애불탑
마애불탑

적멸보궁을 보러 올라가는 길에 괜한 걸음을 시작했나하면서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온갖 핑계거리를 떠올리며 고민하다 대개의 여행자는 힘들게 올라가봐야 뭐 별거 없을 거야 하는 자기위안과 달콤한 포기라는 유혹에 못 이겨 월정사의 말사인 상원사로 발길을 돌렸을 것이고 일부 굳은 의지의 여행자만이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 끝을 보겠다며 겨우 마음을 다잡고 힘들게 산을 올라 적멸보궁을 보고 가던 길에, 올라올 때는 힘이 들어 못 본척, 보고도 안 본척, 슬쩍 지나쳤던 상원사를 혹시나 하는 아쉬움에 못이기는 척 들른다면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조성되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상원사 동종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행운까지 누릴 수 있습니다.

상원사 동종과 종루각
상원사 동종과 종루각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손을 내밀어 다정하게 아는 척을 해준다면 오대산 월정사는 그 오랜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유명세만큼이나 끝없는 이야깃거리와 볼거리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추억의 보물창고와 같은 곳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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