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여행-9.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풍류여행-9. 풍경과 사람 그리고 흥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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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5.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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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마음을 뺏긴 강릉 경포대

굴/사진 권오만 교수 (경동대학교 건축디자인학과)=

권오만 교수
권오만 교수

 

동해안 최고의 피서지로 알려진 경포(대) 해수욕장은 수도권에서 접근이 쉽고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보니 대개의 사람들은 마음이 시끄럽거나, 무더위를 피해 막힘없이 탁 트인 푸른바다를 보고 싶을 때 경포 해수욕장을 찾고서는 무심결에 경포대에 다녀왔다고 하여 경포대 하면 흔히 해수욕장을 떠올리지만 경포대와 경포 해수욕장은 서로 다른 곳입니다.

경포대鏡浦臺는 경포호수 북쪽의 나지막한 언덕을 경포대라 하는데 언덕 위에는 경포호수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내려 볼 수 있는 경포대라는 현판을 단 멋진 누각이 있어 일반적으로 이 언덕과 누각을 모두 일러 경포대라고 합니다.

경포대
경포대

특히 대臺라는 곳은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다란 곳으로 다양한 사용목적에 따라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인위적으로 구축하기도 하지만 대개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에 누정을 설치하여 수려한 경관을 즐기는 곳입니다. 경포대 역시 영랑⋅술랑⋅남랑⋅안상 등 신라사선新羅四仙이라 알려진 화랑들이 경치에 매료되어 오랫동안 머물러 풍류를 즐겼던 아름다운 경포호수가 있어 이러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오랜 동안 많은 시인과 묵객이 이곳에 들러 경포호수를 감상하며 풍류를 즐겨왔던 곳입니다.

그런 경포대에서 누정은 없고 언덕만 있다면 뭔가 부족하고 반대로 나지막한 언덕을 뺀 채 평범한 공간에 누정만 홀로 있다 해도 빼어난 주변의 풍광을 높은 곳에서 편안한 시각으로 내려다보며 두루 살펴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을 테니 굳이 말의 근원을 따져서 대와 누정을 분리해서 구분할 이유가 없거니와 오랜 세월이 지나오면서 사람들에게 잠시 잊혀 찾는 이가 없어 경포대의 누정이 폐허가 되었다가도 다시 복원을 거듭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까닭은 경포대와 누정이 따로 구분할 수 없는 동질의 의미로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경포대 누정
경포대 누정
경포대 누정과 경포호
경포대 누정과 경포호

경포대는 관동팔경에 하나로 풍광이 좋은 관동지방은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있어 오래전부터 누구나 한번쯤을 둘러보고 싶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경로 중에 하나였는데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한반도의 근간을 이루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한데 비해 동쪽으로는 큰 바다가 열려있기에 경사가 급하여 눈에 닿는 모든 곳이 기암괴석과 푸른 바다가 어울려 절경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되어 유행하게 된 팔경문화는 고려시대에 유입되어 아름다운 경치와 소리, 소박한 삶의 모습 등 세상 어느 곳이든 멋스런 풍광을 찾아내어 팔경이라 일러 의미를 불어넣고는 운율을 붙여 시를 써서 노래하거나 그림을 그려 기쁨의 여운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오래도록 즐겼습니다.

고려의 문신인 김극기金克己는 팔경시가 유행하는 가장 이른 시기에 한국의 팔경시를 제작하였는데 사신의 임무를 띠고 강릉에 갔다가 승경에 취해 ‘강릉팔경시江陵八景詩’를 남겼는데 이 시가 한국팔경시의 효시가 되었고 이때 언급된 경포대는 자연스레 누구나 한번쯤은 꼭 다녀가고 싶은 관동팔경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관동팔경은 아름답기로 이름난 백두대간 동쪽지역인 관동의 바닷가 경치 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여덟 곳의 경승지를 뽑아 이름 붙인 곳으로 관동팔경이라는 이름의 경승지가 문헌에 나타나는 시기는 박상朴祥(1474∼1530)의 ‘관동팔영關東八詠’을 시작으로 1626년에 신집申楫의 ‘영관동팔경詠關東八景’에서 명확하게 언급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그 이전 16세기부터 관동팔경에 대한 언급이 활발히 있었던 것으로 확인됩니다.

남과 북이 휴전선으로 가로막혀 갈 수 없는 통천의 총석정과 고성의 삼일포를 비롯하여 간성의 청간정,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경포대, 삼척의 죽서루, 울진의 망양정, 평해의 월송정이 관동팔경에 해당하는데 관동팔경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정자와 누각이 함께 어우러진 풍광으로 옛 부터 많은 문인들이 찾아와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시로 읊었으며 화가들은 다투어 화폭에 남기기도 했는데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마저 어제시御製詩를 남겨 관동팔경으로 이름난 풍광과 풍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고을 수령을 부러워했을 정도였습니다.

숙종 임금의 어제시가 있는 경포대 누정 편액
숙종 임금의 어제시가 있는 경포대 누정 편액
경포대_제일강산 현판
경포대_제일강산 현판

번잡했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고 바람마저 잦아든 고요한 저녁 무렵 구름 속에 숨었던 달빛이 호숫가에 내리기를 기다려 경포대에 오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하늘과 바다, 호수, 술잔, 임의 눈동자에 비친, 신선들만이 누릴 수 있었던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포대 누정에서 본 경포호수
경포대 누정에서 본 경포호수

신선의 세상을 닮은 경포대와 경포호수의 소쇄한 풍광을 충분히 마음속에 담으셨다면 사대부 명가가 있는 선교장으로 발걸음을 돌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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